무례한 나의 다중인격자에게, 재겸(2021), 카카오페이지
사흘인가 만에 다 읽었다. 알고보니 재겸 작가는 굉장한 로판 네임드였다.
전후 배경이며 상이군인인 채로 패전을 맞은 군인 가문 귀족 남자와, 전쟁 기간 동안 간호원으로 일했으나 패전으로 인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가정교사로 노동하게 된 고아 여자의 이야기다. 흡사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연상시키는 사연의 주인공들이겠다.
'로맨스 판타지'라는 카테고리가 무색하도록 다중인격이라는 소재의 판타지적인 면은, 말미에 가서 정신의학적이며 분석적인 활용으로 넘어간다. 또 전쟁과 전후, 몰락하는 왕정과 공화정의 물결 사이 근대 배경의 묘사가 훌륭하다. 시대적 배경이 그렇다면 계절은 여름이며 공간은 항구도시인데, 이것이 주는 로맨틱한 효과도 있겠다. 위의 것들이 합쳐지면 작가의 성실한 자료조사가 자칫 오히려 독이 되어 너무 많은 정보값을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욱여넣게 만드는 헤비한 소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프로이고 스낵 컬쳐의 미덕을 다했다.
실례되는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무례한~은 양산형 웹소설과 다른 궤를 가져간다. 이는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의 이름에 견주게 할 만큼 고전 명작의 올곧음과 낭만이 있다는 뜻이다. 연재 소설이면서 꿋꿋하게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주인공이라 사랑스러운가 하면, 완벽하지 않은 악인이라 안쓰럽기도 하는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 특히 주연이 되는 커플은 떳떳하지 않은 인물이기에 명예롭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의 알라"라는 가르침처럼 모르는 자야 말로 아는 자라는 무지의 역설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야말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자다. 그리고, 그런 인생일지라도, 살다보면 언젠가...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무엇보다 수치심과 자긍심에 관한 대작이다. 꼿꼿함, 떳떳함, 성실함과 같이 멸시당하기 좋은 가치를 긍정한다. 어떤 소설은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에 하루를 바꿔놓고 인생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삶의 다른 대목을 살게 한다. 이 소설이 그렇다.
무례한 나의 다중인격자에게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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