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 대안교사로부터 "병신"이라고 들었다. 또 그무렵엔 화장실 청소도구함에 갇혀서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내 친구들은 장난이었는데 까먹었다고 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마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내가 첫눈에 호감을 사는 부류는 아니란 것은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아주 싫어하거나, 아주 좋아한다(혹은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준다. / 칭찬에 대해서 나는 불신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아주 너그러운 마음씨를 갖고 있어서 내게도 좋은 말을 해준다고 지레짐작하는 오만함?). 난 어중간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사람은 아니다. 아마 미움을 사기에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중학교를 아주 작은 학교를 나왔다. 가난한 동네의 사람 없는 학교... 그래도 놀라울 건 꽤 유명한 축구부를 갖고 있어서, 부유한 지역구의 (아마도 그 지역구에서 포기당한) 남자애들이 진학한다. 요며칠 지역아동센터에서 중학교 1학년 애들과 부대껴 봤는데, 얘들이 무척 앳되고 어린 걸 생각하면, 내가 중학교 때 부대꼈던 애들은 말도 안되게 짐승 같았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내 나이에 자녀를 낳아 길렀으니, 세대를 거쳐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어려지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중학교 3년 내내 왕따였는데, 축구부가 특히 날 못살게 굴었다. 수업시간 도중에 물병을 던져서 머리를 맞혔고, 포르노 신음 소리를 냈고, 가장 큰 사건으로는 복도에서 내 뒷덜미를 잡고 머리를 친 다음에, 멱살을 잡고 눕혀서 때리고, 내가 교실로 들어와 피하자 의자를 던지기도 했다. 그래... 뭐...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남자한테 맞는 일은 흔하다...(그땐 또 여성혐오가 기승이었다) 문제는 내가 아주 작은 학교에 지내서 이날의 폭행을 모두가 구경했다는 점이고, 나는 발작을 일으켰으며, 며칠 뒤 내 책상에 김치년이라는 낙서가 생겼고, 조금 뒤에 나를 제외한 모두의 단톡방에서 나를 두고 맞을 만했다는 심판이 이뤄졌단 걸 내가 또 알게됐다는 사실이다

난 진술서로 칭찬을 받은 참이었다(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글을 아주 잘 썼네). 아주 잘 쓰기 위해 무척 상세하게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한번 쓰이면 명확해진다. 그래서 여지껏 아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저지른 짓이다.
나는 달변가였기 때문에 여론을 설득했다고 평가되었다. 나에게는 맞아도 싼 몇가지 요건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합의해주었다. 날 때린 남자애가 딱하다고 했고 그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안타깝다고 했다.

(분명 나를 키운 사람은 내 어머니이고 아버지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아빠는 종종 나를 때리기도 했고, 아주 오랫동안 직업이 없었고, 우리는 가난했고, 두 사람은 이혼했다. 그런데 내가 가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영웅처럼 느끼는건 이 때문일까? 내가 대안교사로부터 병신이라는 소리를 듣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빠는 적어도 그 노인네에게 따지러 달려왔었다. 내게 사과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땐 더 옛날이고, 더 어렸을 때고, 더 부모님이 보호할 만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서운했을까? 나는 더 분노해주길 바랐을까? 그때 아빠가 있었다면 더 분노했을까?)

(그리고 난 발작을 핑계로 학교를 쉴 수 있었다. 어릴 때 그건 내게 아주 좋은 핑계였다. 충분히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결격사유가 되어주었다. 당사자는 전학을 갔는데, 나머지들은 여전했고, 그런 사정은 이제와 다 상관없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고등학교는 멀리 진학했다. 여고였다. 입학하고 9개월쯤 뒤에, 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 여자애와의 첫날 밤에, 난 키스를 거부했다. 삼개월 뒤에, 나는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는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건 아주 놀랍게도 자기변호이다. 그래, 난 아주 오래도록 아팠어, 아주 지겹게 아팠고 늘 아팠어, 난 맞은 적도 있어, 난 괴롭힘 당했어, 난 정상적으로 자라날 수 없었어, 이만큼 극복했으면 기특했어, 그래도 난 그걸 핑계삼지 않았어, 자기연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난 망가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난 별로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았어, 난 그게 내 인생을 휘두르도록 냅두지 않았어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고 마는데, 그게 내 트라우마였을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갱생의 여지가 없는 자식이 된 걸까? 그래서 나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제발 그렇다고 해 줘!
그런데 사실은, 가끔은 내가 스스로 망가진 걸(어릴 때 있었던 일이나 일로 인한 일 때문이 아니고, 결국은 다 당신이 문제였는데) 과거에 핑계대고 싶은 것 아닌가? 왜냐하면 마음이란 건 허상이고 과거란 건 허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슬플 구석이 없는데, 나를 슬픔에 잠식시키고 있는 것이 나 아닌가? 왜 나는 변하지 못할까? 왜 나는 그대로일까? 왜 나는 맞을 만한 인간에서 변화하지 못할까?

나는 열다섯살 무렵인 것 같다. 이제 그땐 십년전이다. 세상에, 십년전 일로 아직도 마음아파한다는 건,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그냥 내가 거기 머무르고 싶어하는 거다. 정말로 내인생을 망침으로써 증명해보이고 싶고, 자해하고 싶은 거 아닐까?

이상한 건, 난 일상적인 불행에 대해선 너무 손쉽게 말하면서 내 과거에 대해선 핑계삼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내 성격이나 습관이나 굳어진 사고방식에 대해선 자기혐오에 종종 빠졌어도 그게 토대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않으려고 했다)
한번 쓰이면 명확하게 기억된다. 나는 기록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가끔 텔레비전 쇼 같은데선 울분을 터뜨리고 긴 독백을 하는 것으로 상황은 나아진다. 테라피스트들은 마주하라고 말한다. 스스로가 도움받을 상태임을 인정하고 도와달라고 말하라고 종용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별소용 없는 일임을 알고있다. 오히려 말하기를 다짐한 순간, 말해야 할 것을 끄집어 내야하고, 그러면 기억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서 이해시켜야 할 시청자가 없다.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서 갈등이 해결되거나 내 마음이 후련해지거나 나아지거나 다른 인간이 되거나 다짐하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대화를 믿지 않았다가, 대화를 믿었다가, 대화를 믿지 않게 됐다.
나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병증을 고백하면 왕따가 되고(이건 내게 커밍아웃 급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왕따였다고 말하면 그럴 빌미가 있는 인간으로 비추어지기 때문에(이건 우스갯소리로는 해도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처럼 포장된다), 난 맞을 만한 인간인 걸 알고있다.

지난 학기에, 같은 조원으로부터 "솔직히 기분 나빴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은 것에 음, 알고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왜 상처받았을까?
그저께, 남아로부터 "말 시키지 마, 꺼져, 남자 선생님하고 할래"라고 들은 것에, 그러니까 걔는 앤데, 난 왜 내가 마치 열살 소녀라도 되는 것처럼 상처받았을까? 난 뭘 또 받아쓰기좀 하자고 제발 선생님 부탁 한번만 들어줘 라고까지 애원했냐?
아니 근데, 우리 오빠는 언제부터 나를 씨발년이라고 부른 거지?
그냥 내가 씨발년이긴 하다... 내가 씨발년인 건 맞는 사실 같다... 이사람들이 날 씨발년이라고 불러서 내가 씨발년이 된건지 내가 날 씨발년 취급해서 씨발년이 되어버린건지 처음부터 씨발년이었는진 몰라도
근데 제발 이딴 말들 좀 담아두지 말아줄래? 살면서 모든 사람한테 호감을 살 수는 없는 법인데?
그런데 내가 나라서 거부당하는 건 아무리 해도 괴롭다.

난 내가 괜찮은 용모를 가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딴게 아니라 그냥 내가 씨발년인 걸 안다
화장을 하면, 밝게 행동하면, 바쁘게 지내면, 돈을 벌면, 합리적인 소비를 하면, 대단한 물건을 사면, 괜찮아질 것 같지만, 결국 뭘해도 괜찮지 않고, 아마도 날 이렇게 만드는 건 나일 거라고 안다.
병원에 가면 나아질 줄 알지만, 아마 내 불안을 잠재울 수는 있겠지만, 내 처지나 형편이나 굳어진 사고방식이나, 내 서사를 바꾸어주는 약은 없다 (환각제를 쓰면 그게 더 이상 나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모든 면에서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지금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며, 나아지지 않으면 차라리 죽기를 담보하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건대 아마 세번째 대목이 문제였겠지? 알고 있어)
정말 명랑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내가 부정적이라서 내게 질렸다는 말은 무적이다. 그토록 혐오받은 천박한 성드립밖에 떠오르지않는데, 그건 마치 남자에게 발기부전이라고 말해주는 것과 같다. 그는 관계 때마다 자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그러면 정말로 서지 않는다. 어떤 미녀가 있든 어떤 끌리는 분위기가 연출되든... 저주와 같이
저주와 같이 나는 열등감에 찌든 사람이, 극복해내지 못하는, 비관적인, 염세적인, 잘못된, 그저 불행한 인간이 된다

그래도 나는 그것만이 전부인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난 표정 짓기에 서툴지만, 대신 거짓말에도 약하다. 난 열등감을 느끼지만, 대신 부럽다고 솔직히 말할 줄도 안다. 난 가난하지만, 끔찍하게 번 돈도 흔쾌히 쓸 수 있다. 난 징징대지만, 남의 슬픔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난 극장과 도서관을 좋아하고, 스페인어를 좋아하고, 친구와 우정과 즐거움을 좋아하고, 너무 쉽게 뭉클해하고 고마워한다.
물론 이건 엔딩을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니 코웃음쳐도 된다.

예전에 난 이런 문장을 썼다(20년 11월 26일): 하지만 불행은 길과 같아서 결국 걸어야 끝난다.
예전에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