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35bGfK8Dp0?si=aselZ6tK21uwB9YQ
비틀즈 풍의 이 노래는 한국에서 오정선이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불렀다(백순진이 편곡했다). 그 노래의 가사가 좋은데, "하늘엔 별들이 흩어져 내리고 / 언덕엔 꽃들이 바람에 날릴 때 / 나는 어여쁜 소년의 손에 의해 /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 가리, / 살며시..." 특히 내 아버지는 이 "살며시..."를 좋아했다.

<스파이와 배신자> 여전히 읽고 있다. 일전에 내가 '한 인물을 만드는 일이 한 세계를 만드는 일보다 못하지 않다(혹은 더 위대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나? 이 책의 재미와 감동은 KGB나 MI6라는 기관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냉전과 안보 범죄의 시대 때문이 아니라,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라는 인물의 평범성에서 온다. 그의 지겨운 감정과 지적 허영이라는 캐릭터성, 소비에트를 떠나겠다는 의지,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세계가 있고 그것이 옳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부고니아>는 우리나라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버전 리메이크다. 지극히 란티모스답다는 생각 그리고 그답게 오만하군. 원작은 자본이 망가뜨린 개인을 그렸고 결국 이 영화에서도 자본가 캐릭터를 차용했다면 이런 선택을 하면 안 됐다. 결국 '다 죽자'잖아? 인간은 다 개새끼들이고 우리끼리 싸워봤자 어차피 기후위기로 망합니다 라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식의 냉소 혹은 선민의식이.

<배트맨 나이트폴> 이 시리즈는 중고서점에서 읽고 먹튀하려고 했는데 읽고나서 그냥 사버렸다. 모르겠다 이제 난 공간이 없다. 내 책장은 점점 부모님 등골만치 휘어지고 방안의 텍스트 농도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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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 유 씨 미 3> 기대 안 했는데 나름의 세대교체 영화였고 난 틴에이지 가족무리 같은 거는 나쁘게 볼 수가 없다(틴 타이탄즈의 영향일지도). 이하 오타쿠처럼 reference 설명하자면: 제시 아이젠버그가 아기들 인솔하는 이민용이고, 로자먼드 파이크가 대디이슈 서브미시브 백인여자 악당이고, 투게더 남편 사랑스럽게 나오고, holdovers 남자애가 f1찍고, 토마스 제퍼슨 응징서사고, 카드 표창 보자기 액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방 등 볼거리가 화려해서 너무 재밌었음

이렇게 놈팽이 한량같은 근래를 보내는 와중에도 졸업 작품 전시회를 마쳤다. 산만한 시기였으며 정신 없는 하루였다. 심사상 조건은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수업만 말아먹지 않으면 졸업조건을 충족한다. 이걸 마친 다음날 단톡방엔 무임승차한 조원 졸업재심사하라느니 고발하는 카톡이 올라오며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물론 내 일은 아니다. 난 수월했고 우리는 그렇게 공을 들이진 않았지. 모두가 이렇게 졸작을 애정없이 하진 않을 텐데, 모두가 이렇게 졸업학년을 감흥없이 보내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올해는 졸업시험과 졸업작품 모두를 한꺼번에 마쳤다. 내가 분명 못난 인간일지언정 실패하진 않았다. 이미 밑바닥까지 와있다, 어쩌면 지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옥은 아니다.

전시회가 끝나고 저녁 먹기 전 시간에 우리는 거의 한시간동안 카톡을 나눴다. 우리가 누구냐면 나와 일전에 내가 고담센트럴과 왓치맨을 구매한 판매자다. 그러니까 도서관 희망도서에 '그래픽노블'은 웹툰과 달리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고(난 아이스너가 주장한 그래픽노블 이라는 단어가 너무 젠체하는 듯해서 싫었다.-번역하자면 '회화문학'이잖은가? 하여간 그건 미메시스류의 예술적인 유럽만화에는 그럴듯 듯하지만 dc나 마블 같은 레이블에 붙을 프리미엄 라벨은 아니다. 그런데 그 덕을 보는 것이다!) 그뒤로 얘기가 이어진 것이다. 난 세종 도서관이 국립 중앙 도서관 만큼이나 도서가 많다고 알려드렸고 우린 거기에 언젠가 함께 갈 수도 있다. 우린 서로의 책장 사진을 공유했고 서로 없는 책들은 빌려 읽자고 약속했다(물론 그걸 읽기 전에 갖고 있는 책부터 읽어야겠지, 콜렉터들이란!). 이제 우린 친구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블랙 프라이데이와 절판작 콜렉팅의 기쁨과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sns 계정을 공유받는다. "책장 맨 위칸에 데미안이 두 권 있던데 헤세를 좋아하세요?" "사실은 중학교 때 읽었는데 나중에 한 권은 선물받았어요" 페터 카멘친트를 추천받았고 다음날 난 그걸 빌려 읽는다. 책은 <데미안>과 구조상으로 아주 비슷한데, 유년에서 시작해서 청년 시절의 방황과 철학적 멘토가 되는 또래가 있다는 점, 이 책에서는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진 않지만 그것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만하다.

한 해 동안 쓴 다이어리가 어느새 이렇게 두꺼워졌음

<바람이 불 때에>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그림책인데 딱히 사읽진 않다가 최근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배송을 시키면서 2만원을 넘기려고 끼워샀다. 사실 그림책이라기엔 이 책이야말로 그래픽노블에 가까운데, 각주가 아주 많이 달렸고 전쟁사에 대한 언급이 많다. 핵폭발을 맞이하는 은퇴한 시골 노부부 이야기. 무척 현실적이고 잔인한 한편으로 따뜻하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레이먼드 브리그스가 <눈사람 아저씨>를 쓰고 그린 그 작가였다. 세상에 그는 어린 시절 내 영웅 중 하나였다. 나는 성숙해졌고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가 됐다. 우리는 이렇게 재회한 것이다.







"날 구해줬군요. 하지만 왜죠? 어차피 우린 다 죽을 거예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싸워야죠. 그래야만 살 수 있는 거예요. ... 그래야 내 안의 내가 살 수 있는 거예요."
'하나부터 열까지 영웅이라...'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 사실 크라이시스 이벤트에서 메타휴먼이 아닌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없고, 바바라의 고뇌가 보여주듯 위기 앞에 무력한 인간은 우리와 지극히 똑같다. 이제 우리의 영웅은 무슨 말을 할까? "우린 용기를 나눌 수 있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팝콘이나 가져와라 로빈 이라는 패러디로 유명한 그 패널.)
이 슈퍼걸 이야기는 말도 안되게 좋군. 캐릭터를 죽인다면 확실히 재밌을 수밖에 없다(물론 이런 크라이시스의 재미 보장성과 인기 요인은 댄 디디오 편집장 같은 괴물을 만든다). 서문에서 밝히기를 울프만은 슈퍼맨으로 하여금 마지막 크립톤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싶었다는데, 나중에서 모리슨은 그런 시도가 싫었다면서 전부 되살려서 쓴게 재밌다.
그래도 사실 어떤 죽음은 모욕적인 한편 여기서는 애정을 갖고 죽인게 느껴진다.
역대 플래시들이 나와 세대교체하는-이런 이야기들은 언제봐도 감동이다. 마치 톰크루즈가 오로지 달리는 장면만으로 영화 팬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듯이 플래시의 다리만 움직여도 뭉클하다. 이제 완전히 시간과 차원선을 넘나드는 상징이 된 그 헤르메스 같은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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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아워>는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의 사족처럼 느껴지지만, 이 시기의 히어로들-카일 레이너와 코너 켄트, 바트 앨런을 본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그린 애로우가 할 조던에 대해 회고하는 결말도 꽤 감동적이다(그들의 우정이 그렇게 끈끈한 줄 몰랐는데, 후일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작품의 내레이터이자 사건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자가 바로 다름아닌 올리다). 그나저나 국내 정발본 표지가 엄청난 스포일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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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투 킬> 배트맨과 로빈의 감독으로 내겐 왠지 좋은 영화를 만드는 양반으로는 보이지 않던 조엘 슈마허지만, 이상하게 세기말의 대작은 대부분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 매튜 맥커너히와 산드라 블록 그리고 애슐리 주드의 눈부신 리즈시절이 담긴 이 영화는, 자신의 딸 아이를 강간한 남자 둘을 총으로 쏴 죽인 흑인(사무엘 잭슨 분)의 무죄 공판을 다루는 법정 드라마다. 아버지 자경단의 살인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그의 인종에 포커스 맞춰져 있다. 심지어 이 법정을 둘러싸고 KKK단의 테러까지 동원된다. 변호사의 최종변론이 주는 임팩트로 마무리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주말에 어머니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보았다.




"코스튬을 입는 사람은 누구나 제 가족의 가슴에 과녁판을 그려 넣는 거나 마찬가지야."
"거물들 머릿속엔 다음 전투밖에 없었어. 뒤처리라는 게 뭔지 아는 놈들이 없어. 그리고 뒤처리 문제는 언제나 있어." "우리가 한 거야. 그 긴 세월 동안… 모두 우연이 아니었어. …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야. 그래서 속이 다 시원했어."
"잘 자." … "나도 사랑해."
조연으로 시작해서 조연으로 끝나는 이야기. 지면에서 다뤄지지 않은 공백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이 책은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시적인 이야기이다. 우리는 영웅을 멀리서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현미경으로 관찰하게 된다. 그들을 영웅이기 전에 인간으로 본다면, 그들을 존경할 만한 부분보다는 약하고 개인적인(개인적이라는 것은 곧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부분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쁘고 악마적이다. 나쁜 책이라서 좋은 책이다. 신화는 좋다. 하지만 취약함, 자기고백, 속죄는 더 좋다. 누가 이 거대하고 자본적이고 희망적인 인물들을 가지고 이렇게 개인적인 고백을 하는 데에 쓸 수 있을까? 한 사안의 해결 방법에 대해 영웅들이 대립한다는 데서 <왓치맨>과 비슷하고, 마블의 <시빌 워>와도 비슷하지만(실제로 아덴크가 시빌워에 영향을 줬다), 이 고민이 그것보다 사적이다. 정말 이렇게 추리소설답게 재밌으면서 동시에 영웅과 가면성에 대한 통찰이라니.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중환자를 보면서 내가(혹은 내 가족이) 저만큼은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건 환자나 간병인 모임에서도 모두 생각하면서 함묵하는 비밀처럼 다뤄진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러 어느 나레이션을 보면서도 그걸 떠올렸다.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을 연상시키는 유명한 패널. "배트맨과 로빈. 고아들." 사실 만화 전반을 걸쳐 시점 전환마다 인물 혹은 관계를 간단히 일축하는 설명이 있는데, 그것의 반복적 효과를 극대화화하는 건조하게 잔인한 서술. 정발본은 감독판이라 끝에 라이터와 펜슬러가 컷을 두고 대담한 것과 시나리오가 수록되어 있다. 글쓰기와 연출에 대해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되고, 책도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새삼 픽션만이 나를 이렇게 가슴뛰게 할 수 있네! 마치 백년의 고독에서 돼지꼬리처럼, 브레이킹 배드에서 은방울꽃처럼, 스파이와 배신자의 "영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의 "홀아비"와 "고아들"이 이제 자리한다.

아침에 토익을 보고 점심으로 우동을 먹었다(성심당 우동야). 평소에 영어공부를 할 땐 리스닝이 수월한 반면(난 하루종일 영미권 콘텐츠를 보곤 했으니까), 리딩은 난독증 때문에 어려웠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 달랐다. 천장에 붙은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오는데 내 머릿속은 딴생각을 해서 블러처리한 것처럼 들리지 않았고, 그런 반면에 리딩 파트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글이 시각적으로 너무 빨리 읽혀 금세 풀었다. 시간이 모자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처음으로(드디어, 처음으로) 본 시험이니 차차 더 잘할 수 있겠지. 어차피 토익은 계속 보는 거니까.
새벽에 아덴크를 읽고 밤을 새운 뒤에 생리가 시작돼 진통제를 먹고 간 시험이었던 걸 감안하자. 낮 내내는 잠을 잤고, 일요일의 마지막 의식으로 버스 터미널에 가서는 또 책거래를 했다. 맙소사 우리는 세번째였다 그것도 정체를 모르고 세번이나 만날 뻔했다. 그러니까 난 이 동네가 좋고 여길 고향이라 여긴다. 졸업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다시 엄마의 집에 살아도 될까?
그래. 아마도. 내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라니. 그게 얼마나 위안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