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고 결정권자를' 선출해서 만든 콘크리트 유토피아. 대표 민주주의의 탈을 쓴 집단 이기성
 
아파트를 나눠 학군을 운운하고, 단지 내 놀이터에 타 아파트 아동 출입을 금지하며 배달기사가 지상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게 현시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 권력 사회 시류를 잘 읽은 사회 드라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인물 묘사에 집중했다. 때문에 사회 문제를 겨냥하면서도 개개인이 살아있어 악의 평범성이나 집단 이기주의 문제로 환원해 볼 수 있고, 과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쥐여준다. 김영탁(이병헌 분)에 비춰진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해보면 그처럼 대한민국의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도 없다. 그는 처음으로 이룬 가정을 실패한 뒤 재난 이후 숨어든 아파트에서 끊임없이 가장의 노릇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아파트 구성원 남성에게도 같은 역할을 강요한다. 영탁은 무시무시한 인물이지만, 악역이라 꼬리표 붙이기엔 너무나 안타깝고 또 필요한 일을 했다.
영탁이 윗세대 남성의 전형이라면 김민성(박서준 분)은 이입할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민성은 박서준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 대부분이 그러하듯 대한민국의 2030 남성을 대표한다. 행정학과 출신 공무원인 그는 주민회의에서 발언권을 얻었을 때 로봇처럼 말한다.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고, 조직을 만들고, 결정권자를 선출해야 한다." 재난에 처참히 무너진 가운데에서도 이토록 사회는 답습된다. 결정권자가 된 영탁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외부인을 아파트에서 쫓아내며, 민성의 처우를 쥐락펴락한다. 민성은 외부인을 감싸는 그의 아내 명화에게 말한다. "제발 쓸 데 없는 짓 좀 하지마. 여기서 쫓겨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에 공감하지 않았을까? 명화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개의 리뷰에서는 심지어 명화가 답답하고 발암이라고 한다.-- 민성은 주관없이 생존에 급급하고, 권력에 기대며 인정을 갈구한다. 아니다. 아파트 대부분의 주민이 그렇다. 윗세대의 권력(영탁)에 기대어 위치를 보존했으므로 그들의 유토피아가 무너졌을 때 비난의 화살도 맹목적으로 따르던 그에 향한다.
마지막 대사는 영화를 일축한다. "아니요,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지혜롭게 시작한 정치가 주민들을 극단적인 이익 추구 배타 집단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타자를 추방하는 것이 영화 속 일만은 아니다. 또한 영화를 잘못 읽는 관객이 수없이 많을 것임은 한순간 지상이 쑥대밭이 되는 것만큼의 공포다. 영화에서는 재난이라도 일어났지 우리는 계기도 없이 자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