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은 다시금 호이테마를 촬영으로, 고란손을 음악으로 기용했다. 루드비히 고란손의 음악은 영화의 가장 드라마틱하지 않은 장면들마저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러닝타임 내내 사운드를 감싸며 휘몰아치는 그의 음악은 다소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면서도, 주인공이 오펜하이머임을 생각하면 말마따나 "연극적인" 인물을 표현하는 톤으로서는 미스초이스가 되지는 않는다.
진술로써 기억의 편린이 모인다. 특기인 시간과 초점의 플롯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했는데, 전기영화로서 취하기 유리한 것이었을 테다. 몇 가지 장면을 해체해서 교차편집하고, 조각보처럼 엮어놓았다. 영화는 원자폭탄과 윤리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다루지는 않는다.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내걸었듯 전기에 충실하면서 전적으로 오펜하이머의 심리에 의지할 뿐이다. 그런데 개인이 가진 죄책감에 모든 책임을 지워버리는 한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그를 두둔한다. 당신의 발명 때문에 나의 아들들이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명령을 내린 것은 정치인"이라는 트루먼의 말. 영화는 차라리 매카시즘으로 희생당한 영웅사를 그리는 것이다. 감독은 자신을 매료시킨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평전을 쓴다. 포스터는 '핵을 등지고 선 오펜하이머'를 위시하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발명해내며 빛나는 사람이나 그것을 발명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라고만 라벨을 붙일 수는 없다. 그는 그저 스스로 꾸민 인생의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뉴 멕시코의 로스 알라모스에 자신이 사랑하는 물리학을 움트게 한. 그리고 '별이 죽은 다음'을 연구하는 사람답게 결말이 난다. 아인슈타인이 그러했듯 물리학자로서 수명을 다하고 죽지만 블랙홀처럼 폭탄을 터뜨린다. 결국 영화는 감독이 쓴 오펜하이머 탄원서다.
와중에 "음악을 들을 줄 알면 악보는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과학에서 유식함과 배웠음은 수학을 언어로 쓸 줄 아는지의 여부다. 오펜하이머는 자수성가한 아버지를 두었고 엘리트였지만, 또한 그중에서는 열등생이었으며 게다가 수학에 밝지 못한 과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맨해탄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서 트리니티 실험을 성공시켰고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었다.
다만 그는 마냥 가련한 인물도 아니다. 문학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그렇듯 유머러스한 구석이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오펜하이머에게 버지니아 울프 같은 구석을 보았고, 그건 가련한 얼굴과 사연 뒤에 웃기는 기질이 있음을 말한다.) 석학 시절 지도교수의 사과에 시안화칼륨을 주입하는 것만 봐도 각이 나온다. 또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를 미천한 구두장이라고 칭하질 않나 공개적으로 모욕한 것을 보라. 나로서는 스트로스가 더욱이 이해되는데, 자수성가한 후원자로서 2세 유대인이 면박을 주면 화가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아내가 육아에 지긋지긋해하자 바로 맡겨버리는 줏대는 무엇인가.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오펜하이머의 자식들은 늘 울고 있는 모습만 비추고 "산출물"과 같이 취급된다는 것이다. 핵을 세상에 내놓았듯 자식도 세상에 내놓았다. 달리 말하자면 원자폭탄도 그의 자식이며 오펜하이머에 의해 피투성되었다. 오펜하이머도 자신 부부를 이렇게 말한다. "우린 이기적인 사람들이야."
놀란이 연출한 영화들이 매번 그랬듯 로맨스는 어설프다. 오펜하이머와 진 태틀록의 정사 장면은,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를 말하는 첫번째 씬이건, 청문회에서 까발려져 모욕당하는 동시에 부인 키티에게 모욕을 주는 장면이건 그렇다. 놀란의 영화에서 여성인물들은 지극히 납작하고 페티쉬적이다. 심지어 놀란 영화의 여자들은 전부 죽은 아내 역할이라는 밈이 있을 정도이므로. 그런 인물들에 그나마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여배우들-마리옹 꼬띠아르(인셉션), 엘리자베스 데비키(테넷)-의 몫이었으니, 이번 영화에서도 에밀리 블런트와 플로렌스 퓨의 울분과 섬세함이 담긴 연기가 공이 크다.
또 인종통합을 지지하니 마니 하는 시대배경이므로 고증을 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백인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처음 라미 말렉의 출연은 모욕적인 분량이었고 후반에 이 평가가 뒤집히긴 하나 영화가 인종차별적이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보다못해 던져주는 여성 과학자의 출연 또한 없는 것보단 낫지만 이 모든 출연이 불평 방지용처럼 느껴지는 바다.
개인적으로 씬스틸러라 느꼈던 인물은 베니 사프디가 분하는 에드워드 텔러였다. 텔러는 슈퍼라고 칭해지는 수소폭탄의 아버지다.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을 발명하지 않는 대가로 원자폭탄을 자제하기로 하는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반면, 텔러는 군비 경쟁에 찬성하며 개발하기를 원한다. 다만 영화에서는 실존인물보다 비교적 온화하게 나오는데, 오펜하이머와의 우정 또한 각별해 보인다. 수소폭탄을 무시당한 텔러는 게으른 수학자가 되어 동료들과 한 탕 싸우고 로스 알라모스를 떠나려 한다. 오펜하이머는 그를 바로 뒤따라 나선다. 텔러는 오펜하이머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을 거라며 떠나버리리라 말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기꺼이 주에 한 시간은 너에게 시간을 쏟겠노라 말한다. 누군가의 한줄평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 놀란이 "과학자들을 락스타처럼 그려놨다."
"사프디 형제" 중 한 사람이기도 한 베니 사프디의 연기는 전공자의 연기와 달리 투박하며 자연스럽다. 또 그가 가진 풍채와 외모, 목소리가 주는 아우라는 가히 시선을 끈다. 그의 연출작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연기를 하는 그가 더욱이 보고 싶은 이유다. 이렇게 큰 영화에서 이렇게 큰 역할로 나왔으면 연기자로서의 향후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저명한 배우들이 총집합한 영화인지라 보는 즐거움이 컸다. 놀란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킬리언 머피를 시종일관 아름답게 찍어놓았다. 연기에 대해서는 특출난 감흥을 받지 못했는데, 요란스러운 사운드와 화면에 오히려 묻어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놀란의 영화 보다는 켄 로치의 영화에 어울릴 사람이다(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또 더 보이즈에서 휴이 캠벨 역이었던 잭 퀘이드의 출연도 반가웠다. 잭은 이 영화에서도 휴이(혹은 배우 자신) 같으면서도 파인만 같다. 내게 파인만은 괴짜에 웃긴 사람이라는 이미지였고, 영화에서도 똑같은 얼굴이 봉고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