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апитан Волконогов бежал(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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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속죄는 누가받는가?
<6번 칸>의 유리 보리소프가 주연한 이 러시아 영화는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표도르 볼코노고프 대위는 조국의 주적인 간첩 등 반동분자를 특별심문이라는 이름으로 고문하고 자백을 받아낸다. 그는 진실을 모른 채 체제의 일원으로서 하달받은 명령에 따랐지만 죄인이 되었다. 그의 상사가 말했다. "자백하면 편할 텐데 하나같이 결백을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진짜 결백하기 때문이야." 고문관인 표도르는 출근길에 그가 고문하던 남자의 자살 시신을 본다. 창문에서 투신해 머리가 깨진 시신이다.
그날 표도르는 탈출한다. 군은 그를 쫓는 수색대를 보낸다. 표도르는 이민 노숙자들과 은신해 밤을 보내는 도중, 군에 의해 노역을 하게된다. 그것은 군에서 처리한 시신을 묻는 일이다. 표도르가 묻는 시신 중에는 그의 동료가 있다. 표도르 볼코노고프 대위가 탈출하는 바람에 고문당하고 군법 재판에 부쳐져 죽은 동료다. 동료의 시신을 묻은 그는 환상을 본다. 동료가 땅에서 기어나와 말을 건다. 우리는 지옥에 있다고. 표도르의 내장을 빼내며, 지옥은 이런 고통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그리고 네가 우리와 달리 지옥에 가지 않는 방법은 한 사람에게 용서를 받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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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데에 대단한 소비에트 연방 배경지식은 필요 없다. 한국에서도 가까운 현대에 반공주의가 무고한 사람들을 옥에 잡아 넣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군무에서 이탈한 병사를 잡아 족쳐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사상 그 자체가 아니라 독재와 시스템이다. 표도르는 그다지 정의감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다시 기지에 들어가 자신이 처리한 죄인들의 파일을 꺼내온다. 유족들을 만나 그들은 무고한 사람이었다고 고백하고 속죄한다. 그러나 그는 의무적으로 속죄를 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천국에 갈 사람처럼 회개한 것이 아니라 동료의 시신이 건 저주 때문에, 단지 그 말과 고통의 경험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지금껏 그래왔듯이. 사람들을 협박하기 위해 총구를 들이미는가 하면 용서를 강요하는 양상을 보인다.
죄인이 아닌 사람이 형벌을 받는 시대에 저지른 죄도 모르는 사람이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마지막에 가서야 그는 죽은 동료를 만난다. 자신의 파일에 없던 유족 노인의 몸을 씻긴 다음이다. 심지어 표도르는 노인에게 죄를 고하지도 않았다.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마음으로 속죄했고 행동으로 연민했다. 구원의 계시를 받은 표도르는 그를 쫓아온 수색대 앞에서 말한다. "지금 날 쏘면 난 천국으로 직행일 텐데." 기침을 달고 사는 폐병 환자인 수색대 대장은 생각한다. 미쳤군. 완전히 미쳤어. 표도르는 자신이 탈출하던 날 아침에 본 시신처럼 투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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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고 평범하게 행하던 일이 사실은 악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악 그 자체인 세상에서 개개인은 무지한 악의 일원이 된다. 합창대의 일원이고 탭댄스를 추며 주스 사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동료는 사람이 죽는 앞에서 몸을 굳혔지만 표도르는 그렇게 여린 사람이 안 되었다. 자살한 시신을 보고 군에서 탈출함은 그의 결정이었지만 속죄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 인해 죽은 동료 때문이다. 그가 회개한 계기는 다분히 마술적 사실주의에 기초하고, 그가 만난 구원은 종교에 의한 안식이 아니라 차라리 후련한 도피처럼 보인다. 그가 고문한 시신과 비슷하게 죽은 모양새는 마치 복수를 당한 것도 같다.
그런데 표도르 볼코노고프가 죄인인가?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죄를 지고 죽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그에게 죄를 지워 죽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 한 사람의 속죄로 인해 마음 편해지지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이 정의로워진 것도 아니다. 국가의 죄 앞에서 개인이 갚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개인은 무고한 죄인이 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국가와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죽음 뿐이다. 그가 죽은 뒤에 풀려난 유족들은 행렬을 지어 형무소를 빠져 나간다. 대개 여자와 아이로 이루어져 처자식일 그들의 수는 한참 많았는데 물론 그건 고작 한 사람의 무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