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2023. 8. 29. / sight

 
특색있는 배우들의 호연을 등에 엎으면서 해녀를 소재로 한 해양 액션 활극은 재미가 없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흥행 감독 류승완은 케이퍼 무비의 교과서처럼 맛깔난 상업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심지어 여성해방 영화다. 
 
상큼하고 즐겁기만 한 영화일 줄 알고 상영관에 들어갔지만 영화는 "밀수"라는 제목을 가진 범죄 영화임을 선언하듯 처음부터 진숙(염정아 분)의 아버지를 핏물로 만들어버린다. 밀수항이 붙잡혀 진숙은 교도소로 직행하며, 혼자 빠져나간 춘자(김혜수 분)를 원망하며 세월을 보낸다. 진숙은 바닷가의 큰 언니며 가족을 잃었고 자신의 옛 친구인 여자를 배신자로 여기며 증오한다.
 
깊은 감정의 골을 보여주는가 하면 영화는 엽기적이고 시원한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장도리(박정민 분)가 권 상사(조인성 분)을 칼질하러 떼거지로 찾아가서는 칼에 찔리는 장면이다. 장도리가 엽기적이고 짜증을 자아내는 표정을 하며 배를 까는데 배에는 칼이 박힌 두꺼운 나무 판때기가 있는 것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가 BGM으로 촌스럽게 깔리는, 권 상사를 잡으러 간 모든 장면은, 엽기 싸구려 주성치st 코미디고, 최근 극장가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 숨이 막히던 관객으로 하여금 피를 치솟게 하는 희열을 주는 것이다.
 
영화는 느와르와 코미디는 물론 소년만화가 되기도 한다. 진숙 아버지의 배는 밀수항이기 때문에 고잉 메리 호를 방불케 하는 해적력을 선보이며 시종일관 웅정한 연출을 보인다. 해녀 무리는 가히 밀짚 모자 해적단과 같은 포스다. 결말에 이르러 진숙이 아버지의 배를 돌려받고 몰게 되었음은 전형적인 소년 만화 주인공 서사다. 진숙의 결연한 표정. 염정아는 쉰이 넘었음에도 얼굴에 소년성을 간직하고 있다.
 
또 김혜수는 드물게 90년대 이전의 연기톤을 보유한 배우고 복고풍의 영화에 이보다 걸맞는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조인성과의 케미스트리도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다. 박정민의 신이 들린 엽기 연기에 고민시의 발견도 반갑다. 상영관 안에선 웃음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령대 높은 관객이 많았다. 누구와 봐도 즐길 만한 영화겠다. 나로서는 작년 <유령>에 이어 잘 만든 상업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막차를 타는 바람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