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서술한다. 언뜻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듯한 이 겹문장은 약간의 의문점을 남기는데, 불행한 가정이 나름나름으로 불행한 것과 별개로 인간사의 모든 일이 그렇듯 비슷한 양상으로 불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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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적인 세 희곡은 마치 연작처럼 닮아있다. 블랑쉬('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마거리트('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어맨드('유리 동물원')는 극을 이끌어나가는 여성 캐릭터이며, 모두 편집증적이고 또한 나쁜 의미로 낙관적이다. 그녀들은 삶에 질려 있으면서도 허무맹랑한 망상적 미래를 기대한다. 주변인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설파하고 남성에게 의존적인 성향까지도 같다. 혼인한 남성에게 동성 연인이 있었다는 모티프 또한 공통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의 죽은 전남편은 동성 연인이 있었으며,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마거리트의 남편 브릭에게는 그를 열렬히 사모한 친우 스카피가 있었다. 성격적인 면모에 더해 남편의 이력 또한 블랑쉬와 마거리트는 거의 동일한 인물이다.
극작한 테네시 윌리엄스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묘한데, 그는 청교도적이고 히스테리컬한 어머니를 가졌으며 동성애자였다. 또 그는 올리비아 랭의 저서 '작가와 술'에 언급된 바 있는데, 브릭의 알코올 의존증 묘사를 보면 이 또한 경험적 묘사임을 유추할 수 있다. --'역겨움' 때문에 술을 마신다거나, 머릿 속이 '찰칵'하고 꺼질 때까지 마신다거나-- 이처럼 작가주의적 관점으로 보자면 유리 동물원의 로라는 윌리엄스의 누나 로즈의 분신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 로즈는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금치산자이고 로라 또한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절름발이다. 유리 동물원에서 톰은 로즈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안타까워하고, 도와주면서도 떠나버리고, 떠나버리면서도 잊지 못하고 마음에 묻어둔다. 윌리엄스는 로즈를 죽기까지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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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 용감해요, 그걸 생각하면 난 위안을 받습니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당신은 스스로가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죠, 하지만 난 알고 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 덕분에 내가 밥 벌어 먹고 산다는 것을요." -테네시 윌리엄스에 부쳐, 말론 브란도
(<The Trip to the Echo Spring: On Writers and Dringking>, Olivia Lang)
그러나 희곡에서 신경쇠약에 걸린 어머니는 지극히도 자주 쓰이는 장치이다. 픽션은 결국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므로 당대 여성들 중 그러지 않은 여성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입센의 '인형의 집'은 가장 유명한 여성주의 희곡인 것이다.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도 그처럼 신경쇠약하고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유령과도 같은 어머니가 있다. 오히려 블랑쉬나 마거리트는 게이 페르소나처럼도 보이는데, 남성성에 대한 객체적 욕망과 함께 패배적이면서도 패배에서 비롯한 낙관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그린 여성 인물이라기엔 지나치게 박상영의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즉 지극히 작가적인 캐릭터가 여성의 껍질을 뒤집어 씀으로써 기묘한 아우라를 가진 여성캐릭터로 재탄생한 것이다. 물론 비비안 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분한 영화의 이미지가 강렬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머릿속의 극 올리기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아래는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민음사판이다.
먼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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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장애물을 넘었어요?" "왜냐면, 내가 그전에 넘곤 했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과거에 자기가 즐겨 했던 걸 하고 싶어 하거든.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후에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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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제게 종종 말씀하시죠, 브릭, 너랑 대화를 하고 싶구나. 그런데 대화를 하게 되면 제대로 된 적이 없어요. 아무 얘기도 안 하는 거죠.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허튼소리나 늘어놓으시고 저는 듣는 척하고 있어요. 듣는 척하려고 하지만 실은 거의 안 듣고 있어요. 의사소통이란…… 지독히 힘든 거죠. 아무튼 아버지랑 저 사이에서는 그게…… 안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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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위와 더불어 살아왔어! ……왜 너는 그렇게 못하니? 젠장, 너도 더불어 살아야만 해, 허위 말고 같이 살 게 또 뭐가 있니? 안 그러냐?" (…) "그건 사는 게 아니야,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거지." "전 도피하고 싶어요." "이봐, 그럼 왜 자살하지 않냐?" "술을 마시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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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라는 그물에서 내가 포착하려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아니다. 나는 일단 사람들의 경험, 다시 말해 공동의 위기라는 암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간의 흐릿하고, 켜졌다 꺼졌다 하며, 오래 지속되지 못하지만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상호작용의 진정한 속성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작중 인물의 성격을 드러냄에 있어서 신비스러운 뭔가는 남겨두어야 한다. 실제 삶에 수많은 신비가 늘 남아 있듯이, 자기자신의 성격조차도 그러하듯이 말이다. 이것이 극작가로 하여금 자기가 정당하게 할 수 있는 한에서, 명쾌하고 깊이 있게 관찰하고 탐구해야 하는 의무를 면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 들어맞는' 결론이나 평의한 정의로 인해 인간 경험의 진실을 담아내는 덫이 되지 못하고 그저 연극에 불과한 연극을 만드는 것으로부터는 벗어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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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선 난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게 없어요. 어떤 면에서는 더 못하죠. 생명력이 떨어지니까요. 아마도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살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거의 살아 있지 않다 보니 어쩌다가 진실해졌네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찌됐든…… 우리는 친구였던 거군요…….
…… 그리고 친구가 된다는 건 서로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거잖아요……."
'브릭'과 그의 아버지인 '플리트 할아버지'가 대화하는 2막은 전반적으로 나와 아버지를 연상케 했는데, 브릭은 무기력한 인물이며 플리트는 그런 브릭을 아들로서 가장 사랑하면서도 유산을 남겨줄 만큼은 미더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플리트는 목화 농장의 대부이지만 그의 입으로 말하길 평생 동안 이룬 것은 그렇게 쌓은 재산과 아들 하나 뿐이다. 신물나게 하는 여자와 의무적으로 살면서 죽은 뒤에 남기는 것이 고작 그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못난 아들놈 브릭은 똑같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와 살면서 심지어는 유산을 받을 욕망도 없이 술을 마시며 삶에서 도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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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동물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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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없는 줄 알아요, 엄마? 알아요, 알죠. 엄마한테는 내가 하고 있는 거랑…… 내가 하고 싶은 게…… 서로 다르다는 게 중요하지 않죠. 엄마는 그렇게 여기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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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행을 하는 대신에 영화를 보러 가고 있어요! 할리우드 배우들은 모두 미국인들을 위해서 온갖 모험을 해야만 해요. 미국의 전 국민은 어두컴컴한 방에 앉아서 그들이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