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앨리스
Alice in den Städten(1974), 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2023)에서 카메라는 구식 문물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데에 반해 도시의 앨리스(1974)에서의 폴라로이드 사진기는 신식 문물의 상징이다. 그건 마치 영화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필름은 열차의 도착 만큼이나 식상해졌다. 빔 벤더스는 여전히 로드 무비를 찍는다. 

 

최근의 영화 중에서는 컴온 컴온(2021)을 연상케도 하는데, 매너리즘에 빠진 청년 남성이 팔자에도 없는 보모 노릇을 하면서 손 안에 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남자는 청탁받은 원고를 하나도 진행시키지 못한다. 그는 미국의 풍경에 관한 글을 써야하지만, 시종일관 카메라로 미국 곳곳을 찍어댈 뿐, 글쓰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앨리스를 만나 예정에 없던 우연 속에서 장소를 탐색할 때, 그는 수첩에 무언가를 계속 끄적거린다.

 

사실 영화도 아주 좋았지만 서이제 작가님의 시네토크는 정말 공부가 됐다. 영화-보기와 글-쓰기, 시신경의 묘사에서 벗어나 리듬 타기, 우연성의 포착, 매체 고민 등.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씨네필"이라는 소개로 일축된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학창 시절 대전 아트시네마를 다녔다. 이 공간의 재미에 대해서 회고하면서 작가님은 말씀하셨다. 청주에서 대전으로 버스를 타고 오가며 창밖으로 풍경을 보면, 나는 가만히 있지만 차가 움직이기 때문에 창밖의 풍경이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처럼 변한다. 그때 나는 mp3를 통해 음악을 듣고있다. 그리고 풍경이 변하기 때문에 나의 생각 역시 꼬리를 물고 흘러간다. 영화를 볼 때는 스크린을 바라보지만 영화를 보는 내 심상을 함께 보게 된다. 탈 것을 타고 이동하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경험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이런 이야기.   

아, 내 일기를 읽어 주시는 것 같다. 그녀는 영화를 공부했지만 전업 소설가다. 그리고 이 지역을 오가는 경험은--마치 그녀의 소설에서 구체적인 지명을 사용하듯이-- 묘사 없이도 경험적으로 공간을 상상케 한다. 그러니까 내가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든, 소설을 투고하지 않았든, 지금 어디 살든,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  감히 동질성을 느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