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엔 룸메이트가 떠났고, 혼자 지냈고, 새 룸메이트가 생겼다. 자기만의 방이 잠깐 생겼던 두 달은 놀랄 만큼 방종했고, 그렇지만, 자유롭지 않을 때라고 해서 근면성실하지도 않았다.
좋지 못한 일이 많았다. 교수 앞에서 운 적도 있었고 울었다고 해서 좋게 끝나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차피 불행에 골몰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무용하게 기록하지 않겠다.
착하고 반듯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빛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시궁창 속에서 지저분한 나를 겉만 살짝 닦아 모면했다. 매해 최악을 갱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올해는 기록적으로 또 가시적으로 말아먹었다.
물론, 어느 날의 내가 썼듯이-"무슨 일이든 아무렇지 않고 아무것도 치명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건 사실 얼마나 잘 체념할 수 있는가에 가깝다. 무척 부정적으로 들리는데, 나를 가장 잘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은 나라서 다른 그 무엇도 나를 상처입힐 수 없다.
연말은 내외적으로 속상한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마음가짐을 갖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 Let us go...
하루에 한두개씩 경님과 성실히 파티해서 완결을 보았다. 난 징크스 실코 에코가 좋다.
이번 방학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프랜차이즈 햄버거 파트 타임을 구했다. 목요일부터 출근한다. 아르바이트에 관해서; 난 여러번 실패를 겪었다. 그리고 내 무너진 학점이 그렇고 삶의 방식이 그렇게 됐듯이, 경로 의존성이라는 건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한 번 실패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이 실패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난 회복 탄력성이 존나 좋다고.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고 수도 없이 믿어 왔다고.
(그리고 놀랍잖게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아먹었지만, 여하간, 이러다 보면 어떤 시도는 성공할 것이다.)
이날은 테트리스가 너무 잘풀렸어
목요일에, 난 서울에 출발했다. 그날 기차는 낮중에 잡아두었고 아침에는 보건소에 들러 보건증 검사를 했다(롯데리아에 취직하기 위해서).
점심엔 중앙로에 가서 딸기 시루를 샀다. 이게 크리스마스 후일에 대전에서 올라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지하 우동야에서 김치 우동을 먹었고, 중학교 때 기억하던 것만큼 맛있었다. 중앙로에서 대전역까지 구지하상가와 신지하상가가 연결되었다. 덕분에 성심당에서 대전역까지 지하로를 통해 한 번에 갈 수 있다.
수지씨를 만나 (한 번 보겠다고 먹골역에 찾아가겠다고 했었다) 비엘 웹툰 그림을 전달드리고 토크. 항상 느끼건대, 이렇게 나랑 다른 사람도 없고, 이렇게 할 말 없이도 영원히 대화가 된다는 게 신기하다. 우리는 너무 많이 얘기했기 때문에 이제 같은 얘기를 반복하기만 한다.
돌아와서 심야에 서브스턴스를 봤다. 언덕과 나는 최근 우연히 왓챠 파티로 감독의 전작을 봤다(<리벤지>). 귀갓길에 대화했기 때문에 따로 구구절절 쓸 건 없다. 역시 이 무서운 영화에 대해서 나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감상이라곤 자기혐오에 대한 것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 혐오와 외모와 나이듦에 대한 메세지를 읽어내겠지만, 그리고 그게 맞는 독법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 내 영혼을 수도없이 욱여넣어본 사람으로서. 이럴 때 육체는 표상(이미지)에 불과하다. 나는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단지 내 생김새 때문은 아니고, 나의 사랑스러운 과거와 지금의 대비와, 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모습, 건강한 사람들이 활보하는 거리에 나갈 때 최대한 감싸는 내 수치심 때문에. 수가 리즈에게 말도 안되는 폭력을 행사할 때 나는 돌이킨다. '내가 하는 건 그냥 자기 혐오가 아니라, 존나 어느 시점의 나한테 돌아가서, 복날에 개패듯이 죽어라 때리고 싶어.'
하지만 자해는 한계가 있다. 손목을 긋거나 다리에서 뛰어내릴 만큼 대단한 자기혐오는 없었다. 나는 차라리 몬스터가 되고 싶고, 피를 토하고 싶다. 차라리 미치고 싶다고 말한다. 미칠 수 없다고 말한다. "시드 비셔스가 뭐 대단한 인간이라서 미친 건 아니잖아? 운과 시기가 따라줘서 미친 놈의 아이콘이 된 거잖아?"
그리고 오늘은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고통을 끝낼 수 있어.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있어.' 남들은 용기를 내거나 각오를 하지 않는 아주 작은 것들을 '해내면서'.
금요일에 언덕과 경님과 이지씨를 만난다. 예술의 전당에서 두 개의 전시를 예매했다: 카라바조와 퓰리처. 점심은 바로 앞 순두부 집에서 먹었다. 시간이 남아서, 근처 카페에 갔다. 전날 밤 소분해두었던 딸기시루를 나누어 먹었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했다. 언덕은 네팔에서 온 쥐 인형을 주었고 경님은 거북이 도장과 귀여운 그림 편지를 주었다. 짐을 풀고 정리하는데 가슴이 벅차게 뭉클하다. 거북이라니. 김'수완'무 거북이와 두루미...
카라바조 전. 이 그림들은 초반에 귀엽고 감동적이라서 찍었고 아래 그림들은 모욕당하는 예수라든지 참수라든지 오타쿠 그림이라 찍었다.
오타쿠 그림이 많아서 오타쿠 코멘트하느라 말도 안 되게 재밌었네. 다만 이 사조에 소개되는 메두사 그림이라든지 유디트 그림이라든지 더 잘 그린 다윗 골리앗 참수 그림이라든지를 실물로 보지 못한 게 아쉽다. 바로 위의 가운데 그림은 심지어 엽서로 샀는데, 뭐 가장 인상깊었다는 건 아니고, 내가 잇몸 염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시의 포토 부스가 재밌었다. 아래에 예수의 가슴 아래 구멍(탑 수술 흉터?)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에이리언4 그림이 있고, 위에는 '강렬' 필터가 적용된 우리 사진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예수 모욕 포즈를 재현하여 멋진 사진을 남겼다고.
예술의 전당에서는 고흐전이 한창이었는데 줄이 늘어서고 아주 불티나게 팔리는 와중 우리는 그러고 놀았다.
퓰리처전은 어쩐지 최근의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한다(계엄령, 집회, 항공 추락). 전쟁, 기아, 재난, 사람들은 슬퍼하고, 어느 순간들은 역사가 되고, 우리는 쳐다보는 방식으로 함께 살아간다. 셔터를 누르는 일, 사진을 보는 일, 그렇게 싸늘하게 감각하는 일에 대하여. 수전 손택이 했을 법한 말들. 일화: 전시 브금이 이매진 원툴이다. 비틀즈 전원 불가능이라던 이지씨는 예술의 전당을 빠져나와서 "이매진 너무 싫어"라고 말했다.
택시를 타고 강남역으로 가서, 더 폴 감독판 재개봉을 봤다. 나는 이 영화를 2022년 1월에 처음으로 봤고, 당시보다 지금 더욱 무성영화를 사랑한다. 얼마 전에는 스턴트맨(원제: 더 폴 가이)을 봤는데, 헌사적인 메세지가 닮아 있어서 또 이런 우연에 혼자 웃었다. 버스터 키튼이 해내는 놀라운 스턴트, 쇼 머스트 고 온, 땡큐, 땡큐.
영화인의 영화 사랑에 대한 자의식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고, 영화에 대한 영화는 차고 넘치는데, 하나같이 지게 되는 이유는 내가 픽션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달리 영화일 필요는 없고 모든 현실도피에 적용할 수 있다. 승화나 초월이라는 말은 다소 진지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를 지어냈기 때문에 그게 내가 된다.
생각할 것도 없어. 일단 보고 웃고 울으라구. 방구석 침대 위에서 얼마나 많은 모험을 할 수 있는데? 그건 심지어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이렇게 모든 게 비용인 시대에.
저녁은 우리답게 동대문에 가서 몽골 음식을 주워먹고 러시아 케이크를 포장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즐거웠어요. 이런 작별인사야 말로 깨끗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말이지.
다만,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독감을 호되게 앓게 되었다. 두 주 전에 나도 독감에 걸렸다가 이제야 나아서 돌아다닌 건데, 내 친구들 모두가 아프다. 이번 독감은 유독 내 주변에 걸린 사람도 많고 고되기도 하다.
아무튼 다음날 언덕과 나는 홍대에 나갔다. 예매해 둔 전시를 당일에 취소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찍는다. 림가기라는 홍콩 음식점에 가서 오리 쌀국수를 먹었다.
가격도 비싸고 굿즈는 미친듯이 비싸서 김치 전시라고 하도 욕했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잘 짜인 듯. 물론 복사본인 것 같고, 원화를 구경한 건 아닌 듯. 여하간, 나는 이 만화를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았다. 열 살 무렵 크리스마스 선물로 16권 박스 세트를 받았다(당시에는 16권까지 발매되었었다). 초등학교 때 애니메이션을 보았다가, 중학교 때 두 번 다시 보았다. 고등학교 때 17권부터 다시 사 모으기 시작했다. 언덕은 비교적 최근에 보았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그의 생일 선물로 엔비 넨도로이드 피규어를 사 줬다.
어떤 그림들에 군부 미화라고 손가락질 하기도 했지만, 뭐 이 만화가 말하는 가치가 퇴색되진 않는다. 여전히 모든 장면에 가슴이 벅차다. 우정과 사랑과 가족과 도전을 긍정한다.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만화를 보았던 내 시절 역시 여기에 담겨 있다.
드디어 언덕의 이 기프티콘을 써먹는군. 몇 달 전부터 딸기 설빙을 먹자고 벼르고 있었다. 언덕이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찬 걸 먹을지 말지 주저했지만, 결국 군사 분계선을 만들었다가 허물기까지.
저녁에 동네 타코 포장마차를 먹었다. 오른쪽은 '여기 어디야' 짤의 패러디다. 이제 이 벽에는 '잇츠 낫 미' 포스터와 카라바조 사진전 엽서도 붙어 있다. 그 방 벽을 보고 있으면 나와 함께 한 것들이 꽤 많다. 웃기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난 만두가 먹고 싶고 언덕은 호빵이 먹고 싶어서 야식을 시켰다. 호빵을 다섯개를 시켰는데 서비스로 세개가 와서, 이렇게 여덟개를 갖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배를 채웠다.
얘가 요즘 발정기인데 미친캣이 되어서 밤새 우느라 잠을 제대로 못잤다. 여하간 모두가 좋아할 귀여운 사진으로 글을 마친다.